[밴라이프 #02] 가덕도 대항~외양포 주변
차박도 중독이 된다더니.. 첫 차박 이후 돌아오는 길에 '다음 주엔 어딜 가지?' 라는 아내의 말 이후로 내내 다음 차박지를 검색하면서 보냈고 좀 더 나은 장소를 찾는데 몰입해 있었다. 되도록 1시간(최대 2시간) 이내 거리에서 다음 차박지를 찾다 보니 일단 가깝고 예전 가본 적이 있으며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을 물색하다 결국 가덕도 외양포를 두 번째 차박지로 정했다.
바다 쪽으로 고개를 내민 조그만 방파제.. 쉼 없이 일렁이는 파도에 비명처럼 내뱉는 반복적인 파열음.. 수평선 너머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 그 위를 소리 없이 나는 갈매기 한 마리.. 가는 길옆엔 쓰러질 듯 힘들게 버티고 선 고물 의자에 기댄 노인과 잘 어울리는 낡은 적산가옥 한 채.. 그리고 거친 바람에 누운 수풀들 사이로 숨은 듯 고개 숙인 낡은 벙커와 과거 일본군 잔해들.. 그 수풀 너머 언덕 위엔 흑염소 한 마리가 너무나도 태연하게 풀을 뜯고 있는 풍경. 아직도 정산되지 못한 과거의 굴레에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가 숨 막히게 하는 곳.. 파도와 바람소리 말고는 갈매기 조차 침묵하는 섬.. - 내가 기억하는 외양포는 이런 곳이었다.
가덕도 외양포는 거가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만 해도 주로 선박을 이용해 포구로 이동하였으며, 차로 가기엔 길이 좋지 않아 매우 힘들게 다녀온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 산길들이 모두 잘 포장되고, 생태터널들로 연결되어 30~40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곳이 되어있었다.
녹산에서 거가대로로 진입해 거제도로 넘어가는 가덕 TG에 다다르기 직전 천성 IC에서 빠져 대항마을 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처음으로 탁 트인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대항 전망대이다. 이 곳은 차를 댈 수 있는 공간이 적어 그냥 패스~ 내리막길을 좀 내려가면 4거리 회전교차로를 만나게 된다.
왼쪽은 새바지항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대항마을 가는 길.. 외양포로 갈려면 직진을 해야 한다. 참고적으로 대항 선착장 쪽으로 반쯤 내려가다 보면 좌측에 무료 공영주차장이 있는데, 언덕에 3단 정도 제법 많은 차량을 수용할 수 있게 조성되어있으며 입구엔 제법 잘 관리되고 있는 화장실과 관리사무실이 있다. 바다를 조망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냥 단순히 차박만 할 요량이면 고려해 볼만한 곳이다.
외양포 가는 길에 양포고개 즈음에 이르면, 네비나 지도에는 아직 표시되어 있지 않은 외양포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다. 계단식으로 전체 3단이 조성되어 있는데, 가운데 층으로 진입해보니 벌써 캠핑카 2대가 양쪽 끝으로 이미 자리를 잡고 있어 중간쯤에 주차를 하고 비를 피해 일단 어닝을 설치했다. (첨부사진 참조)
이 곳에서 차박을 할 생각으로 초복 때 먹다 남은 닭죽을 끓여먹고 비 내리는 바다를 보며 커피도 한 잔 하는 여유를 부렸지만, 제일 아래층 버스전용 주차면에 위치한 간이화장실을 확인하고는 두말없이 짐을 챙겨 그곳을 떠났다. 바다조망의 멋진 풍경과 넓은 주차공간도 마다할 만큼 화장실 관리상태는 엉망이었고 다시는 보기 싫을 정도였다.
외양포 포구로 이동해 바닷가에서 차박을 할 생각이었지만 이도 여의치 않게 된 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곳은 '영화 촬영 중'이라는 안내문과 함께 관련 차량들이 주차장을 모두 점거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로써 계획했던 화장실이 있는 차박 대상지는 모두 수포로 돌아간 셈이 되고 말았다.
이제 비도 그쳤지만 아내와 차박지를 고민하던 끝에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훗날을 기약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돌아오던 길에 다시 거가대로를 타려고 천성 IC 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아내의 한 마디.. '여기도 주차장이 있네!'. 우측을 보니 제법 큰 주차장이 2단으로 조성되어 있었고, 입구에는 '지양곡 주차장'이란 푯말과 함께 멋들어진 화장실도 보였다.
윗층 주차장 제일 안쪽에 주차를 하고는 아까 내린 비에 젖은 어닝도 말릴 겸 어닝을 펼치고 자리를 잡았다. 또 루프탑을 올리고, 뒷문도 개방하여 처음으로 모기장도 설치해 차박을 준비하였다.
이 곳은 바다 조망도 가능하고 주차공간도 넓으며, 화장실도 잘 관리되고 있어 새로운 차박지를 하나 얻은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1박을 해보니 이상하게도 모기나 벌레가 전혀 보이질 않고 밤에는 추울 정도로 시원하게 밤을 보냈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주차장 아래로 지나가는 도로를 오가는 차들의 소음이 밤새 이어진 점인데 피곤함 때문인지 나중엔 이 소음도 자장가처럼 여기며 꿀잠을 자긴 했다.
이 윗층 주차장은 생각보다 많은 차들이 주차해 있어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가덕도 연대봉을 등반하시는 분들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밤을 지새우고 아침에 출발하시는 분도 있고 새벽 무렵 도착해서 장비를 갖추고 출발하는 모습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반대로 아래쪽 주차장은 넓은 주차면에 띄엄띄엄 자리잡은 3~4대의 RV차들의 차박하는 모습이 보여 보기 좋았다.
아침엔 인근 농장 닭들의 훼치는 소리에 잠을 깨었는데 주변 나뭇가지에 앉은 산새들의 조잘거림도 참 좋았다. 우연히 찾게 된 이 곳이 집에서 30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라 앞으로 특별히 갈 곳이 정해지지 않는 날이면 자주 찾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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